'빅테크' 본고장 美 실리콘밸리 찾는 韓 에너지 기업들, 왜?

IT(정보기술), 반도체 기업들만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는 시대가 지났다. 한국 정유·가스기업 등 에너지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스타트업의 메카인 실리콘밸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친환경에너지 관련 스타트업 지분 투자를 통해 탄소중립에도 대응한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GS그룹의 미국 벤처 투자법인 GS퓨처스와 SK가스 등 한국 에너지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SK가스는 올 들어 친환경에너지 스타트업 투자를 위해 실리콘밸리에 CVC(기업형 벤처캐피털) 역할을 하는 지사를 설립했다. 이는 전날 미국 청록수소 제조 스타트업 씨제로(C-Zero)와 투자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청록수소는 그린수소와 블루수소의 중간단계인 수소생산기술이다. 씨제로는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를 고온 반응기에 주입한 후 촉매와 반응시켜 수소와 고체탄소로 분해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SK가스는 기존 LNG(액화천연가스)·LPG(액화석유가스) 사업에서 수소사업 등 친환경에너지 사업으로 전환하는 모델을 구상 중이다. 특히 씨제로 외에도 탄소를 포집·활용할 수 있는 스타트업에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실리콘밸리에서 출범한 GS퓨처스도 올해에만 배터리 관련 벤처기업 4군데에 투자를 결정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GS퓨처스는 ㈜GS, GS에너지, GS칼텍스 등 계열사 10곳이 1억5500만달러를 출자해 만든 회사다. 업계에서는 GS그룹이 ESS(에너지저장장치)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선제적으로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GS퓨처스는 지난달 초음파 기반 배터리 솔루션 기업 타이탄 어드밴스드 에너지 솔루션스에 투자했다. 배터리 생산단계부터 현장사용까지의 안전성을 검사하는 사업 모델을 갖고 있는 기업이다. GS퓨처스는 이외에도 올 하반기에 배터리 제어 솔루션 스타트업 릴렉트리파이(Relectrify), 에너지 빅데이터 분석 기업 오토그리드(Autogrid), 전기차 충전 솔루션 기업 RPS(Resilient Power Systems)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다.

그간 실리콘밸리에 지사를 두고 스타트업 투자를 물색하는 것은 IT, 반도체 기업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에너지 기업들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 기존 사업과 연계된 스타트업 지분 투자를 통해 친환경 에너지 시장을 선점하고, 회사 이미지를 미래 지향적으로 제고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친환경에너지, 탄소저감 관련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많아지고 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을 필두로 막대한 투자금이 탄소저감에 도움이 되는 친환경 스타트업으로 몰리는 중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클라이밋테크 투자 자본은 2012년 10억 달러 수준에서 지난해 160억 달러로 늘었다. 올해엔 190억 달러 이상의 투자금이 몰릴 전망이다. 반도체와 인터넷 모바일, AI에서 기후·친환경쪽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우리 대기업이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친환경쪽으로 투자하는 일이 많아지면, AI, 반도체 등에 치중된 중소기업들과 스타트업도 다양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코트라 실리콘밸리 무역관 관계자는 "최근 실리콘밸리에 대기업 에너지 계열사들이 진출해 투자를 물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현재 우리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AI와 반도체쪽으로 치중됐는데 앞으로 대기업을 따라 친환경·기후 대응쪽으로 다양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스타트업이 가진 AI 기술을 기후대응과 탄소저감 등에 활용하면 투자 유치에 용이할 것"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