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ESG 전환 가속…반도체 구매 새 기준 된 '저전력'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메모리 반도체 수요의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글로벌 빅테크들이 ESG 경영을 위해 저전력 반도체를 꾸준히 구매할 것이란 시나리오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도 이 같은 관측을 근거로 반도체 ‘피크아웃(고점 후 하락)’ 우려가 과도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늘어나는 데이터에 전력량 급증

19일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은 250TWh로 전체 전력 생산량의 약 1%에 달한다. 올해 사용량은 집계되지 않았지만 코로나19로 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도 함께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시설이다. 데이터를 처리하고 보관하는 서버용 PC를 가동하고 PC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는 데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간다. 게다가 데이터센터가 처리해야 하는 정보량은 매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자동으로 생성하는 데이터가 급증하고 있는 영향이다.

시장조사기관 IDC IGIS에 따르면 인류가 2018년까지 축적한 디지털 데이터는 33ZB(제타바이트)였지만 4년 뒤인 2025년엔 한 해에 새로 생성되는 데이터만 175ZB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1ZB는 1024엑사바이트(EB)로 1조1000억기가바이트(GB)에 해당한다.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는 데이터센터 가동에 필요한 에너지 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 ESG 경영을 위해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데이터센터를 가동하기 시작하면서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는 반도체를 많이 구매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메모리 반도체만 교체해도 데이터센터 유지 비용이 확 내려간다. 삼성전자는 최근 자사 뉴스룸을 통해 저전력 메모리 반도체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공개했다. 지난해 출하된 데이터센터용 하드디스크(HDD)를 낸드플래시로 만든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로 바꾸고 서버용 D램을 새로운 표준인 DDR5 제품으로 교체하는 경우를 가정했다. 이때 미국 뉴욕주 거주자들이 4개월간 쓸 수 있는 연간 7TWh의 전력을 아낄 수 있다.

불붙은 저전력 반도체 시장 쟁탈전

현대차증권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내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를 1732억달러로 예측했다. 데이터센터 운영 업체들의 고성능·친환경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올해(1603억달러)보다 시장이 8%가량 성장한다는 관측이다. 올해 하반기 D램 현물 가격이 급락하면서 제기된 메모리 반도체 피크아웃 우려는 지나치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중장기 시장 전망도 이와 비슷하다. 일시적인 부침은 있겠지만 데이터센터용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제조사들도 저전력 제품 알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선보인 데이터센터 전용 SSD를 밀고 있다. 이전 세대인 5세대 V낸드 기반 제품보다 전력 효율이 50%가량 개선됐다. SK하이닉스는 고성능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HBM3 D램에 기대를 걸고 있다. D램 칩에 수천 개의 미세한 구멍을 뚫어 상층과 하층 칩을 연결하는 TSV 기술을 활용한 제품으로 기존 D램 패키지보다 전력 소모량이 절반 정도 줄어든다.

DDR5 D램은 두 회사 모두 사활을 걸고 있는 제품이다. 시장이 열리는 시점은 내년 2월이다. 인텔이 이 무렵 DDR5 D램을 쓸 수 있는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를 출시할 예정이다. DDR5 D램은 이전 표준인 DDR4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두 배 빠르고 전력 효율도 30%가량 높다. 업계 관계자는 “빅테크들은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전력 소모량이 낮은 반도체를 구매할 것”이라며 “저전력이 반도체 구매 기준이 되면서 경쟁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